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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국 순교자 필사 세번째

by 인생은 영화처럼 2025. 3. 12.

 

 

 

책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결말로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지만 씁슬하기도 하다. 

 

필사하는 부분은 아직은 절정이다.

뒷 부분으로 갈 수록 한글자 한글자 모두 필사하고 싶을 정도로 빼놓을 부분이 없다. 

그러나 양이 방대해서 할 수 있을지....

 

 

"내 얘길 들어봐!"
박 군이 외쳤다.
"자넨 내 아버지가 정말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지 않나?"
"알고 있어. 신 목사가 자네한테 보낸 편지는 나도 봤어."
"알고 있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냐."
그는 안달하듯 말했다.
"자네가 조금 전에 한 말을 놓고 다투느니보다는 내 아버지 얘길 들려주는 게 낫겠군. 목사들이 강 언덕으로 끌려갔을 때 공산주의자들을은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라고 2분간 여유를 주었어. 알다시피 내 아버진 목사들의 지도자 격이었어. 목사들은 아버지 주위로 모여들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지."
"그 배반자들도 포함해서?"
"아니지. 그들의 소행을 생각하면 화가 치미는군. 신 목사는 얘기하지 않으려 했지만 난 그를 붙잡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어. 그 배반자들은 빨갱이들에게 매달려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걸했다는 거야. 자기들은 공산당이 시킨대로 예배 때마다 이렇게 하고 저렇게 했다, 당신들이 약속한 흥정을 잊었는가, 라면서 말일세 배반자가 누구누군지 다른 목사들이 알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 나머지 목사들은 내 아버지더러 자기네 영혼을 위해서, 구원과 용기를 위해서,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어. 그런데 아버지가- 그 열에 찬 광신자가 기도를 하지 않은 거야, 알겠나? 그는 기도하지 않았어.
'난 당신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어. 나를 위해서조차도 기도할 수 없으니까'
라고 그는 말했다네. 그러고는 이렇게 외쳤다는 거야.
'정의롭지 못한 하나님에게 나는 기도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그는 죽어갔어. 신 목사 말대로 절대 고독 속에서 말야."

"젊은 한 목사가 맥을 놓고 무너진 건 그때였어. 그 젊은 친구에게 내 아버지는 늘 보살피고 뒤를 봐주던 일종의 보호자였지. 알고 있나? 그는 내 아버질 믿었고 그 광신자가 자기 하나님과 믿음에 대해서 하는 말이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믿었어. 그 젊은 목사는 자기가 아버지한테서 배우고 믿게 된 것, 말하자면 내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그 끔찍한 밤낮을 그나마 버텨왔던 거야. 그의 육체는 무너졌지만 그의 영혼은 버틸 수 있었거든. 그 늙은 광신자가 보여준 용감한 저항 덕분에 말일세.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가서……"
그는 갑자기 말을 중단하고는 돌아서면서 조용히 말했다.
"잘 자게, 난 가봐야겠어."
나는 방 밖으로 그를 배웅했다.
"자네도 기도하나? 기도할 수 있어?"
"난 안 되네."
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해할 수 있겠나? 난 기도할 수가 없어!"
"해보고 싶은데도?"
"물론이야, 해보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해보고 싶어."
나는 그의 팔을 잡았다.
"자넨 다시 돌아가고 있는 건가, 기독교 신에게로? 아니면 벌써 돌아간 건가?"
그러자 그는 놀랄 정도의 강렬한 어조로 대답했다.
"난 한 번도 그에게서, 그 신에게서 떠난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너의 신이었어. 자네한텐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 그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지. 그렇지 않다면 그동안 내가 어떻게 그 신과의 싸음을 계속할 수 있었겠나?" 
"지금도 그 신과 싸우고 있어?"
그는 반항의 시선을 내게 던졌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 가게." 내가 말했다.
"잠깐, 얘길 해야겠어. 내가 오늘 가기로 한 그 장로의 집이건 누구 다른 장로의 집이건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냐, 알아듣겠나? 내가 원해서, 하고 싶어서 자네 말처럼 무슨 역할을 떠맡고 있는건 아니란 말야."
"난 이해가 안 돼."
"신 목사였어, 알아? 아버지 교회의 장로들을 만나보라고 날 설득한 건 신 목사야.
'그들을 찾아가시오. 가서 그들이 당신을 돌아온 탕자처럼 환영하게 하시오. 그들에게 가서 당신이 돌아왔노라, 용서받으러 아버지에게로 돌아왔노라, 아버지의 믿음, 그들의 믿음으로 다시 돌아왔노라고 말하시오. 가서 그들을 위로해주시오. 그들은 이미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오.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회개한 아들이 돌아왔다는 걸 보여주시오'
-이게 그의 말이었어. 그는 나더러 추도예배도 도와주라고 부탁했어. 사람들은 내가 아버지에게로, 아버지의 믿음으로 되돌아온 것은 죽은 아버지와 죽은 목사들의 희생이 낳은 기적이다- 이렇게들 생각하게 되겠지."
"그럴 순 없다고 왜 말하지 못했나? 자기가 하는 일을 믿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렇다면, 그런 척만이라도 하시오'라고 신목사가 말하더군. 그런 척이라도 하라고 했어!"
"하지만 왜?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위해서지, 몰라서 묻나?"
그는 격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난에서 시달리고 고문당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야. 모르겠어?"

우리는 말없이 헤어졌다.

- P.213~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