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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국 / 순교자 / 필사하기 두번째.

by 인생은 영화처럼 2025. 3. 8.

 

 

어제 부분에 이어 오늘 이 부분 부터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가, 믿고 싶은 걸 믿는가!

 

그날 저녁, 신 목사의 집에 묵고 있던 박 군이 나를 만나러 왔다. 그는 오래는 지체할 수 없노라고 서둘면서 자기 아버지 교회의 한 장로 집으로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잠깐 앉으라고 내가 권한 의자까지도 마다하고 말했다.
"장로들이 모여 내 얘길 한 모양이야. 그들은 내가 자기네 집으로 와서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들인 것 같아. 그래서 오늘 밤은 지금 찾아가는 장로 집에서 묵고 내일은 다른 장로 집에 가 있게 될 거야."
"반가운 얘긴데."
"그 낯익은 얼굴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해지더군. 난 그들이 모두 나라면 잊어버린 줄 알았어. 하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날 만나보고 싶어 하는지 어떤지는 나로선 자신이 없어. 그들이 날 초대했을 때 솔직히 말해서 난 놀랐다네. 자네 아나, 장로들 몇이 모여 나를 주빈으로 초대하기도 했었네. 믿을 수 있겠어? 그리고 참, 중앙교회 뒤에 쳐놓은 천막 봤나, 자네?"
"천막? 못봤는데?"
"거기다 천막을 치고 예배를 보는 거야. 신 목사도 거기 와서 설교를 했지. 그리고......"
내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평양은 언제 떠날 참인가?"
그는 내 질문에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건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어. 왜 묻나?"
"자네 수송 편을 준비해둬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자네 계획을 좀 알아둬야겠어."
그는 잠자코 있었다.
"순교자 가족대표로 나가겠다고 동의했다면서?"
그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그래 그 행사를 모두 끝낼 생각인가?"
그는 시선이 강렬해지면서
"그렇다네" 하고 대답했다.
"그럴 생각이지. 고 군목과는 얘길 했었어. 오늘 자넬 만나러 왔었지? 내 보기엔 자네가 요즘 우리 하는 일을 일부러 이해해주지 않으려는 것 같아."
"예배가 끝나는 즉시 난 자네를 돌려보내야 해, 부산으로. 거기 해병대 사령부로 신고하면 돼."
"부산? 왜 부산으로야? 우리 연락장교도 같은 얘길 하던데."
그는 분명 심란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난 우리 부대로 돌아가야 해."
나는 이미 해병 연락장교에게 박 군을 부산 사령부로 내려 보내도록 주선해놓은 뒤였다. 나는 또 바 군이 정보장교가 아니므로 그에게 총퇴각에 관한 얘기는 하지 말도록 연락장교에게 당부해 두었었다.
나는 박 군더러 말했다.
"자네가 평양을 떠날 때쯤이면 자네의 중대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울 거야. 지금도 벌써 위치를 모르고 있거든. 그 얘긴 들었겠지?"
"음, 들었어."
"거 보라고. 예배 바로 다음 날 떠나도록 주선하겠네. 어쨌건 자네는 그 예배에서 모종의 역할을 맡기 위해 여기로 온 것이고 자넨 지금 그 일을 하고 있어. 그게 끝나면 난 즉각 자넬 되돌려 보내야 해."
"알겠네." 그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가능하면 여기 며칠만 더 묵었으면 좋겠어. 장로들은 중앙교회 재건을 위해 모금할 얘기들을 하고 있네. 나도 떠나기 전에 뭔가 도와주고 갔으면 싶어서 그래."
"미안하이."
그는 갑자기 내게로 가까이 오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자네 요즘 어떻게 된 거야?왜 그래? 자넨 나까지도 경멸하고 있나?"
나는 속이 뒤틀려 견딜 수 없었다.
"이봐, 난 자네도 그 누구도 경멸하지 않아! 내가 경멸하는 건 자네들의 그 행동이야!"
나는 언성을 낮추기 위해 애쓰면서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걸 주었다고? 하지만 왜 그 사람들을 속여야 하나? 이미 수없이 속고 속아온 사람들을 무엇 때문에 또 속이는 거야? 그들의 비참한 생애 어쩌자고 거짓말까지 보태는 거냔 말야? 그들이 원하는 걸 주었다고? 그래 그들이 원하는 것이 거짓말 한 보따리란 걸 자네가 어떻게 알아?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진실이야.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이야말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자네들은 그걸 줘야 하는 거야. 이 모두가 그들을 위한 것이고 그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아니지! 자네들이 그러는 건 선전을 위해서, 교회를 악명에서 구해내기 위해서야. 만사 괜찮아질 것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그들을 잘 보살펴주시고 국가는 그들의 운명을 진지하게 걱정해주고 있고 그러니 만사 괜찮아지걸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믿게하기 위해서지. 그것도 그들의 이름으로 말일세. 난 지쳤어. 이 모든 가식, 이 모든 고상한 거짓말,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위해 저질러지는 이 모든 것이 이젠 역겨워 견딜 수 없어. 그래 그 동안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고난에 시달리고 여전히 죽어가란 말이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속고 기만당한 채?"

 

 

(아... 이 얼마나 멋있는 독백인가... 남자 연기 독백으로도 손색없지 않은가!)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건 무엇인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무엇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 좋지만 심각해지기도 한다.

 

마지막까지 읽은 후기는 필사 마지막에.